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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판단력비판에서 자신의 철학 전체의 기반인 능력들의 합목적적 관계에 공통감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그것을 자신이 오랫동안 고민했던 미감적 판단의 보편적 소통을 가능케 하는 원리로 삼았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들의 합목적적 관계를 성립시키는 궁극적인 규정력이 목적과 보편의 능력인 이성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거칠게 말하자면, 모든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이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 그것이 바로 보편적 소통을 가능케 하고, 그럼으로써 공동체적 감각과 인간들의 공동체를 성립시키는 궁극적 근거라는 것이 칸트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감의 궁극근거로서의 이성은 칸트의 역사철학 속에서도 자연의 목적이라는 이념 하에 인간 공동체 최대 단위인 인류의 역사적 운명을 밀고나가는 힘으로 등장한다. 능력들 간의 일치는 이성의 자기동일성 회복이라는 점에서 공통감은 사실 이성 그 자체이며, 이 이성의 이념은 칸트 철학 전체, 때문에 당연히 칸트의 미학적, 정치적, 역사적 사유까지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의 논의가 확인한 바이다.

공통감에 대한 칸트의 사유는 인간들 간의 공동체적 감각이 현실적 경험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단순히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원리를 우리 마음의 능력들의 차원에서 규명하고자 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그러나 칸트의 결론인 이성에 근거한 공통감 개념은 현실적 과정에서는 결코 그 달성이 쉽지 않은 보편을 원리이자 목적으로 미리 전제함으로써 그 보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공통감, 공동체적 감각을 사유함에 있어서 칸트의 기여를 계승하면서도 그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우리로 하여금 미리 보편을 전제하지 않고 그 보편에 이르기까지의 실제적인 차이, 갈등, 불화, 소통, 화합의 과정,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성립되는 공동체의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해줄 다른 마음의 원리 혹은 능력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의 적극적 구성원리로서는 이미 그 한계를 노정한 이성과 이성의 이론적 사용태로서 근본적으로 이성과 구분되지 않는 지성이 그러한 원리일 수 없음은 지금까지의 논의로부터 분명하다.

새로운 공통감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는, 공통감이 보편적universal 이성reason이 아니라 공통적common 감성/감각sense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편은 자신의 의미를 하나uni-’로부터 길어오지만 공통은 함께com-’를 이야기한다. ‘하나 됨함께 함은 같은 것이 아니다. 공동체를 형성함에 있어서 하나 됨은 미리 전제될 수 없다. 그것에 도달하기까지는 장구하고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미리 전제될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되는 것, 또 그것을 목표로 하는 것 자체가 소망스러운 일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단위의 공동체에서 이 하나 됨혹은 보편이 원리나 목표, 이념으로 채택되었을 때 발생한 억압과 불행에 대한 수많은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것은 다양한 차이들을 하나로 수렴시키는 것이라기보다 차이 그 자체가 소통 속에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일, 함께 함을 고민하는 일에 가깝다. 그러므로 새로운 공통감을 사유함에 있어서 첫 번째 과제는 공통을 보편과 등치하거나 전자를 후자로 대체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다. 이 첫 번째 과제는 자연스럽게 감성을 이성으로 대체하거나 전자를 후자의 지배하에 두는 일을 문제성 있는 것으로 만든다. 계속 반복해서 논의되어 왔거니와, 이성은 무엇보다 보편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통감을, 그리고 그것의 기초를 다른 무엇이 아닌 감성 그 자체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사실 철학사에서 칸트는 그 이전의 누구보다 감성의 중요성을 평가하고 인정한 철학자로 기억될만하다. 혼란과 기만의 원천 정도로 치부되고 모욕 받았던 감성은 칸트에 의해 인식과 미감적 판단에 있어서 대체불가능한 역할을 수행하는 필수적 능력으로 인정받는다. 칸트의 저작 속에서는 아예 직접적인 감성에 대한 변호”(Anth §8-§11)까지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감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이러한 후한 평가는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칸트에 와서 감성은 분명 이전에 비해 높은 위상을 부여받았지만, 그것이 여전히 이성과 지성의 지배와 규제를 필요로 하는 천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각주:1] 감성은 인식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자료를 제공하지만 감성에게 그 이상의 능동성과 자유는 결코 허락되지 않는다.[각주:2]

그러므로 새로운 공통감을 위한 모색은 감성으로부터 출발하되 칸트적 의미의 감성으로부터 출발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다른 감성'에 관한 이론이 필요하다. 이 '다른 감성'은 인식과 수동성의 한계를 넘어서 타인과의 만남을 가능케 하고, 그 만남을 통해 우리 자신의 변화 역시 가능케 함으로써 새로운 공동체 구성의 원리로 기능할 수 있는 존재론적이고 정치적인 힘을 가져야 할 것이다. 과연 감성이 이러한 힘을 가질 수 있는가, 가질 수 있다면 이 새로운 감성과 다른 능력들은 어떤 관계를 맺게 될 것인가 등이 이 '다른 감성'에 관한 이론이 대답해야 할 문제들이다. 그리고 이 문제들에 대한 탐구가 새로운 공통감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의 시작이 될 것이다.[각주:3]

 

 

 

 

  1. “우리가 결국 제거할 수 없는 감성에서의 수동적 요소는 실제로 그것에 대해 말해지는 모든 악의 원인이다. 인간의 내적인 완전함은, 인간이 모든 능력들을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 하에 두기 위해 그 능력들의 사용을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점에 존립한다. 이를 위해서 지성은 감성(그것은 사고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 천민과 같다)을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지배해야 한다.”(Anth VII144, 강조는 인용자) [본문으로]
  2. 감성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천재와 상상력에 대한 칸트의 입장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속성[취미와 천재 - 인용자]이 상충하여 어떤 것이 희생되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천재 쪽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술의 사안들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원리들로부터 발언하는 판단력은 지성을 파괴하기보다는 차라리 상상력의 자유와 풍요를 파괴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다.”(V319-20) [본문으로]
  3. 이러한 작업을 위한 단초를 스피노자의 정념 이론에 대한 Alexandre Matheron, Gilles Deleuze, Antonio Negri 등의 해석가, 정치철학자들의 작업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은 세부적인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 정념 이론이 품고 있는 정치적 잠재력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물론 이러한 작업들이 공통감 개념, 특히 칸트 공통감 개념의 혁신과 만나는 지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스피노자적 의미의 정념이 칸트적 의미의 감성과 어떻게 접합될 수 있는가라는 매우 근본적인 문제를 포함한 수많은 물음들을 다루어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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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담수